2024-02-27 오키쿠와 세계, 2023
“세계, 현실에 닿는다, 현실이 바뀐게 아니라 확장된 것이다, 진실에 닿는다. 나는 글을 알지만 목소리를 잃었고, 너는 글을 모르지만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만 진심이라는 같은 것을 지니고 있기에 소통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 느낀 키워드는 같음과 다름, 차별, 순환, 공존, 공생 과 같은 키워드이다. 얼마전에 본 ‘그린 북’ 의 핵심 키워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몇년간 내가 본 영화, 책, 그리고 근 몇년간의 베스트셀러들의 주제를 보면 언급한 키워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현재 사회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하는 것들이 비슷하다고 느낀다.
너와내가 먹는 것의 가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소화되어 나온 결과물은 다른가? 고급재료를 먹었을 순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다른가. 그것은 소화되어 어딘가로 이동하고 퇴비가 되고 땅을 구성하고 결국엔 계급을 떠나 너와나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오키쿠는 에도시대 무사집안의 딸이다. 사회 지배층이던 무사의 딸이 어떤 연유로 공동주택을 쓰는 최하계층과 섞여 살게 된 것이다. 공동주택 생활 초기의 그녀는 배변활동의 결과물 조차 섞이는게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을 그들과 구분지었다. 이는 인트로의 화장실 씬에서도 마찬가지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며 체통을 중시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시련속에서 오키쿠는 아버지를 잃게되고 더불어 목소리도 잃게된다. 몸으로 떼우는 계급이 아닌 지배계급 출신에게 있어 목소리를 잃은 것은 당시 천민들이 목소리를 잃은 것보다 훨씬 큰 상실 이었을 것이다. 이후 두문불출하는 오키쿠에게 주정뱅이부터 온갖 동네사람들이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내민다. 이러한 손길속에서도 칩거하던 오키쿠를 일으킨 것은 오키쿠로부터 글씨를 배우던 아이들과 중의 방문이었다. 목소리를 잃어 다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 오키쿠에게 목소리는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고 할 수 있는 것, 목소리가 아닌 다른 것 (손) 으로 가르치면 되지 않냐고, 중요한 것은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니냐는 중의 말에 오키쿠의 마음은 움직인 것 같다. 아직 모든걸 잃은 것은 아니라고,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한 것에서 부터, 앞으로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에서 부터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을 느꼈을 것 같다.
이러한 것을 보면 삶은 잔인하면서도 희망차기도 하다. 가장 절망을 준 것으로 부터 희망을 찾아야 하니까. 다리가 잘린 운동 선수, 발을 잃은 암벽 등반가, 손을 잃은 피아니스트. 당시에는 절방에 빠졌겠지만 가장 큰 절망으로 부터 다시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절망의 구덩이로 부터 ‘세계’ 로 다시 손을 뻗는 방법뿐이다.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오키쿠는 점점 본질에 다가가게 된다. 계급과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더럽다고 외면했던 것들을 개의치 않게 된다. 그러면서 세상과, 세계와 점점 접속하게 되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간다.
난 처음에 정말 아무런 정보가 없이 영화를 보았다. 스치듯 우연히 포스터를 보았고 포스터의 글자조차 읽지 못했었다. 단지 제목만 보았을 뿐. 정각에 맞춰 겨우 도착해서 정보를 얻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신선하고 유쾌하며 삶의 본질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그것을 너무 진지하거나 가볍게 다루지 않는 느낌을 받으며 상당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할 때 주었던 포스터를 손에 쥐고 영화관을 나왔을 때 신기하게도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내 눈앞에 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그런 느낌이 있었고 검색해보니 맞았다. 영화관에서 행사가 있었던 듯 하다. 그렇게 나도 어떤 세계와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