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9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굉장히 정신없고 멋지고 다양한 연출을 사용해 하고싶은 말을 하던 영화였다. 사실 친구가 보자고 하면서 보내준 영화 설명에 양자경만 보고 봐야겠다! 라고 결심하긴 했다. 복잡하고 긴 영화를 하나로 관통하는 문장을 찾는데 애를 먹었는데, 요즘 현대 사회의 사람들의 정보화된 생활 양식, 그리고 그를 통해 구축된 정신세계와 감정들을 연결시켜 해석하니 한결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가 와닿았다.
요즘 사회는 정보화 사회라고 이야기 하기에도 구식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정보기기가 불러온 정보화 사회를 넘어서 인터넷으로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각종 플랫폼을 통한 어마어마한 광고들 + SNS 를 통해 단순 정보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핸드폰 이라는 어마무시한 기계를 통해 언제어디서든! 마케팅과 사람들의 생각들이 우리 뇌간 깊숙이 침투해버린 시대가 되어 이게 내 생각인지 침투한 생각인지 혼동이 될 정도를 넘어 아예 혼돈이란 생각 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사고의 뉴노멀이지.
여튼 영화와 연결시켜보자면 영화의 전개방식은 상황의 컨텍스트와 맞지않게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연결 고리가 생기고 다음 장면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난 이게 요즘 사람들의 머릿속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에 맞게 연결 연결되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갑자기 튀어 나오는 온갖 정보에 (by 핸드폰 앱, 인터넷, 광고) 뇌가 주목하는 모습을 이런 방식으로 연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uniVerse) 점프를 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선택을 하며 생긴 온갖 분기점이 뻗어나갔을 때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SNS 를 통해 타인의 삶 (경험해보지 못한 삶) 을 투영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멋지고 잘나가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여러 삶들을 들여다 보는 것과, 내가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잘 나가는 모습과 통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후회하고 다른 삶을 부러워 하게 되는 과정이 지속되면 허무주의적, 냉소적인 어떠한 상태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만 드러난 온갖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마치 그 삶을 일부 경험한 것처럼 그 삶을 안다고 ‘착각’ 하게 된다. 직접 경험해보고 느끼지 못한 온갖것들에 대해 간접체험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고, 안다고 ‘착각’ 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영화속의 누군가처럼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노력해봐야 시도해봐야 경험해봐야 부질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흥미를 잃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부질없으니 뭐든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허하다고 라벨링 할 수 있는 감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사랑, 우정, 우울, 행복, 좌절, 부끄러움 등등. 여기서 긍정적인 감정에 냉소적인 라벨링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라벨링을 하는 선택권이 있을 것이다. 사랑, 우정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좌절,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이 부질없는 것이라 라벨링 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따라서 부질없다는 태그를 어디에 라벨링 하냐는 것이 중요하고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영화의 연출이 굉장히 복잡하여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상당히 다를 것 같다. 나는 요즘 사회의 생활모습과 연관 지어서 위와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적어본다.